편지: 학과 이름

이 광근


(2000년 여름, KAIST 재직 당시 KAIST "전산학과"의 이름을 바꾸자는 논의에대해 교수님들께 드림.)


선생님들께:

저는 왜 학과 이름을 바꾸어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세상 어느 과나 그룹이나 연구소나 학교도, 이름은 쉽게 바꾸지 않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컴퓨터학과"가 되면 달라지는 게 뭐가 있을까요? 학생들이 "여기다!" 하고 구름같이 몰려올까요? 이름에 신경쓸 시간에 그 내실을 위해 좀더 신경쓸 수는 없을까요?

세계 어느학교나 그 조직을 보아도 제대로 움직이는 곳은 이름을 자꾸 바꾸지 않습니다. 세태에 맞지않는 이름이라도 그대로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ACM"이 65년도에 이름을 "Association for Computing and Information Sciences"로 바꾸자는 데에 전 회원이 투표를 했었습니다. 65년도이니까, 당시에 전산이라는 분야를 독립된 분야로 인정받기위해서 아웅다웅하던 때라고 합니다. 그렇지만 그냥 그대로 무척 촌스럽지만 Association for Computing Machinery로 남았다고 합니다. 그 당시 Donald Knuth의 회고성 글[1]이 있습니다. 왜 그당시 1/3이 넘는 사람들이 이름 바꾸는 것에 반대했었는지. "IBM"은 "국제적인 장사기계"라는 이름입니다. 우린 외국어로 폼나게 아이비엠이지만요. "Bell Lab"은 "종 실험실"입니다. 일본의 RIKEN은요? "MIT"는 어떻습니까? 우린 외국어로 앰아이티라고 멋나게 부르지만, 영어를 모국어로 하는 미국사람들이 부를때의 느낌을 살려 우리가 우리말로 불러보면 ``황기원'' 혹은 ``황해도 기술원'' 정도가 됩니다. "Cambridge" 라는 이름도 마찬가지입니다. 중세 칼싸움할 때 몰려갔던 다리가 있는 지역에 옹기종기 모이기 시작한 서원들로 구성된 집단학교 정도가 지금 캠브릿지(칼다리 대학)입니다. 우리로 치면 안동의 물돌이동(하회)정도의 이름이 캠브릿지인 겁니다. Ecole Normale Superieure 는 고등 사범학교, Ecole Polytechnique은 종합기술학교 정도입니다.

우리 이름은 될 수 있으면 소박한 것이 좋을 듯 합니다. 간판을 보고 혹 해서 들어와 봤더니 껍데기 뿐이라는 것을 알게해서 실망시키는 것 보다는, 어 이게 와봤더니 무지 무지한 곳이더라, 를 깨닫게 하는 것이 더 즐길만한게 아니겠습니까. 와서보니 졸업할 때 쯤에는 모든 가능성을 내포한 도타운 통나무로 키워주더라. 우리가 이러한 시스템을 건설하기 위해서 모인 거 아닙니까? 라고 하면 제가 "오버"하는 걸까요?

학교의 학과 이름이 세태에 맞추어서 춤추지 않았으면 합니다. 촌스럽고 세련되다는 판단이 어디 있을 수 있겠습니까? 시간이 가면 겉모양에 대한 느낌은 항상 변합니다. 그때가면 또 바꿔야 할까요? 우리 이제, 이름 가지고 그러는 것에서 벗어날 수 없을까요? 이젠, 강꼬꾸의 째질구래한 구태를 좀 벗을 수 있지 않습니까, 우리는, 아닌가요?

-이광근 드림, 2000년 8월 31일


[1] "Chapter 14. George Forsythe and the Development of Computer Science", in [Selected Papers on Computer Science], by Donald E. Knuth, CSLI Publications/Cambridge University Press, 1996